선무원종공신록을 보면 선무원종공신 3등 명단에 李命男이라는 인물이 2명이 있습니다. 선무원종공신 중에는 선무원종 1등에는 병사 이복남이 있고, 3등에 사노 이복남이 있는데 둘은 동명이인이지만, 선무원종공신록의 1등 란에 있는 병사 이복남 은 충장공의 최종관직이 병마절도사가 맞으므로 공신 1등에 책록된 이복남이 충장공임이 분명합니다.
선무원종공신록을 보면 선무원종공신 3등 명단에 李命男이라는 인물이 2명이 있는데, 이 중 1명은 충의위 李命男이고 한명은 서리 李命男입니다. 충의위는 오위(五衛)의 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된 곳으로, 정공신의 자제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충의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위도총부의 부대는 대부분 일정기간 복무하다가 관직에 거관(관직에 오름, 과거에 급제하지 않거나 음서도 아니면서, 학덕으로 추천받는 남행, 산림도 아닌 방법으로 관직에 임용)되거나 계속 복무연장을 할 수 있는데..... 충의위 이명남은 우리 17세 이명남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17세 이명남은 이미 1591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상태이고, 우리 8세 이억은 정공신이 아닌 원종공신인 점과 12세 이징이 충찬위(忠讚衛)에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성종실록 참고>
서리(書吏) 중에는 중인계층도 있고, 천민계층도 있고, 향리계층도 있지만 지방 향교(鄕校)의 교생(校生:생도)으로 과거에 응시할 실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도 지원을 했고,
6개월에 1번씩 교대로 번갈아가면서 근무해야 되기에 10년간 2천 6백일의 의무복무기간을 채우기 어렵지만, 16세 이명남이 본인의 연령 20세나 18세부터 서리를 했다면 1년에 6개월씩 교대로 근무해도 1574년부터 1594년까지 10년(1년에 6개월을 복무하므로), 1576년부터 시작했다면 1596년이 10년에 가깝다는 점이 있습니다.
서리의 특징 중에는 지방 향교의 교생(유생)도 지원했고, 서리로 있다가 임기를 채우면 종7품 내지 종8품으로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쟁에서 패하여 이량의 당여로 몰린 14세 이감과, 출사를 제한받거나 이런저런 시비로 면직과 복관을 반복한 15세 이성헌을 본다면, 이후 1608년의 별시문과에 병과로 합격하고 지방관으로 부임하는데, 16세 명남이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면, 본인의 훈공이 있기에 그가 관직생활을 할 때 아버지나 조부를 언급하면서 시비를 걸 수가 없습니다. 15세 성헌이 수안에 있는 의인왕후 박씨를 수행한 관원 중의 1명으로 상으로 말을 1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선조실록에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호성원종공신이나 선무원종공신에는 녹훈된 기록이 없습니다.
李命男이라는 인물이 있는가 여부를 호성원종공신녹권이나 광국원종공신녹권, 선무공신이나 호성공신 녹권에은 李命男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된 이명남 중 서리 이명남이 우리 선조일 가능성이 유력합니다.
16세 명남이 별시문과에 합격하거나 응시한 것에 대해 저들이 비판을 가하거나 문제삼지 않는데는 분명 그에게 뭔가 공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무나 호성, 호성원종공신록에 명단이 없는 것을 봐서는 이분이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록된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뒤에 15세 성헌이 이조참판 이전에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 지제교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예문관직제학의 직책을 받은 것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도승지 지제교 직책은 증직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는데,
언젠가 풍천임씨의 족보를 보니까 출가녀 女 李戡 子 成憲 贈都承旨 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풍천임씨의 옛 족보에 수록된 내용을 보니까 성헌의 도승지 직책은 증직이 확실한데, 본인이 부장으로 수안(遂安)에 머물러 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호위한 관원들에게 말 1필만 주고, 별도의 공신책록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원종공신에게는 그의 부친에게 생전 역임한 관직의 1품계를 더 추증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16세 명남이 관직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서 書吏에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고 書吏로 2600일 이상 근무하면 자연 종7품이나 종8품으로 거관하여 관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점, 충찬위 등에 포함되었다면 과거급제 전력에 충찬위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전력이 없다는 점.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書吏, 한성부의 書吏에 지원하여 취재에 합격하여 근무했을 수 있습니다.